올해로 19년이 지났습니다.
전대미문의 9.11 테러. 그 즈음에 저는 한국의 기자로서 LA 다저스 박찬호 선수의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원정 경기를 취재하러 미국에 장기출장을 와 있었습니다.
대략 3주 정도의 일정이었는데, 일단 9월 8일 인천공항을 떠나서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 국내선으로 미주리주의 세인트 루이스에 도착했습니다.
이튿날(한국 시각으로는 10일) 일찌감치 앤하이저 부시 스타디움에 도착해서 기자 크리덴셜을 받았습니다. 그날 역시 박찬호 선수는 선발로 나오기로 됐기에 사진기자 박스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300mm와 600mm 렌즈로 중무장(?)을 하고 신나고 즐겁게 취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른 하늘에 벼락이라더니, 2회 쯤에 소나기가 퍼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중단된 경기는 정확히 2시간 4분이 지나서 다시 계속됐습니다.
이후 그는 짐 에드먼즈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맙니다. 지금에서야 웃을 수 있는 얘기지만 당시 박찬호 선수 본인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지켜보는 저도 몹시도 참담했습니다. 좋은 성적이 나와야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텐데, 그렇질 못하게 됐으니 안타까운 일이었죠.
당시 테러 사건을 보도한 타임지와 뉴스위크지. 가운데 뉴스위크는 9월 24일 특별판.
어쨌든, 현장에서 일단 당시로서는 최첨단이었던 디지털(캐논 EOS D30 *30D와는 다른 기종으로 2001년 경 발매, 300만 화소)로 찍은 사진으로 급한 마감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 나머지 필름으로 찍은 사진들을 현상, 드라이어로 말린 뒤 니콘 스캐너(LS 20)로 스캔해서 콜렉트 콜로 전송을 했습니다.
글로 쓰니, 한 줄이지만 그 당시 상황을 좀 더 적어보겠습니다. 일단 모텔 화장실 내부 문틈에 덕 테이프(Duct Tape)를 봉해서 화장실을 약식 암실로 개조를 합니다. 그런 다음에 현상액과 정착액을 물에 타서 현상용 탱크에 준비합니다. 그런 다음 각각의 약품통을 항온계(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일종의 물 탱크)에 넣습니다.
그런 다음 필름 릴에 필름 두 통을 필름 면을 등지게 맞붙여서 두 통을 한 번에 감습니다. 야구장 등 현장에서는 화장실이 없으니, 검정색 나일론 백에다 두 손만 넣어서 순전히 필름을 감아야 하지요. 그렇게 하면 네 개의 릴이 들어가는 긴 탱크 하나로 필름 여덟 통을 한 번에 현상할 수 있습니다. 물 건너 출장을 갔으니, 자료용으로도 준비해야 하니 무지하게 많이 찍었습니다.
감은 필름을 현상 탱크에 넣고 뚜껑을 닫으면 이제부터는 불을 켤 수가 있습니다. 캄캄한 화장실에서 진땀나는 작업을 마치고 빛이 닿지 않도록 된 탱크 뚜껑을 열고 현상액을 부어 넣어 3분 30초 동안 수시로 흔들어 고른 현상을 기대합니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현상액을 쏟아내고 정착액을 부어 넣습니다.
다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필름을 흐르는 물에 씻어서 덕 테이프로 벽에 붙입니다. 그런 다음 드라이어로 말리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급할 때는 빨리 마르라고 알콜로 목욕을 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린 필름을 여섯 컷씩 잘라서 필름 홀더에 넣고, 라이트 박스 위에 올려 루뻬(확대경)으로 스캔할 필름을 고릅니다. 노트북에 SCSi(지금은 USB로 바뀌었으니 격세지감)로 연결된 니콘 스캐너로 스캔을 합니다. 사이즈가 커야 하니 한 장당 10분 쯤 걸렸을 겁니다.
스캔 와중에 또 다른 필름 현상하기, 필름 말리다가 본사랑 통화 하기, 그 와중에 목이 말라 맥주 마시기... 모텔로 돌아간 시각이 10시 전후였는데, 작업은 새벽 3시 쯤에 끝이 납니다. 이 모든 작업은 팬티 바람으로 이뤄집니다. ^^
지금이야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현상 과정 없이 메모리 카드 리더와 노트북만으로 전송을 할 수 있으니, 그때의 고충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 이전 선배들의 고충은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저만 해도 89년 입사, 암실에서 흑백 프린트를 한 뒤 출고하던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쨌든, 그 다음날 늦게 일어나 세인트 루이스의 게이트웨이 아치도 둘러보는 등 잠시 몸을 추스린 뒤 11일 아침, 그날 7시경에 공항에 도착,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세인트 루이스의 새벽
장비들이 많았지만 (카메라 백, 600mm 망원렌즈, 300mm 망원렌즈, 필름 스캐너, 노트북, 현상약품 키트, 가위, 테잎, 필름 한 바구니, 항온계, 옷 가방... 도합 6개) 그다지 어렵지 않게, 큰 무리없이 탑승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으로 나온 오렌지 쥬스와 모닝 머핀을 먹고 잠시 졸았습니다.
그런데 두시간 정도 지났을까요, 갑자기 기내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잠결에서도 워낙 술렁임이 컸던 지 번쩍 눈을 떴습니다.
기내 방송을 통해서 기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 국가 비상사태이니, 우리 비행기는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공항에 착륙해야 한다. 전 미국의 하늘은 LOCK DOWN이다. 집이 가까운 분들은 렌트카를 이용해서 집으로 돌아 가고, 멀거나 국제 승객은 공항의 항공사 카운터에서 지시하는 대로 호텔로 가서 다음 상황을 지켜 봐야 된다. 지금으로서는 자세한 내용을 얘기할 수 없다...."
비행기는 술렁이는 승객들을 태운 채 예정에도 없던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캔자스 주의 캔자스 시티 남서쪽에 자리한 위치타 공항에 내렸습니다. 공항은 이미 거대한 공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브릿지를 지나 공항 라운지로 들어서니, 모두들 TV 모니터에 눈이 꽂혀 있었습니다.
급하게 항로를 바꾸느라 마치 비행기가 땅으로 꽂힐 듯이 내려갑니다. 위치타 상공. 위치타 상공이었을 겁니다. 캔자스주는 주의 별명이 'Heart of USA'라는 군요. 지도를 이쪽 저쪽으로 한번씩 접으면 그 꼭지점에 해당하는 주라서 그 별명이 붙었답니다. 시골답게 끝없이 광활한 경작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까치발로 화면을 바라 보니, 세상에... 전 세계인 모두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벌써, 여기 저기서 절규에 가까운 비명과 흐느낌이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전화박스와 렌트카 창구에는 긴 줄을 이뤘고, 조그만 시골 공항은 북새통 그 자체였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 치고는 너무도 생생했고, 현실이라기엔 너무도 끔찍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이 떠올라 호흡이 가팔라 집니다.
그 와중에 번쩍 눈에 띄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공항 통로에 붙어 있는 2002년 -그 당시로서는 다음 해- U.S. 여자오픈 챔피언쉽 골프대회 광고판이었는데, '초원의 둔덕 골프장'에서 열린다는 군요. 가운데, 소렌스탐 옆에 박세리 선수의 모습이 보입니다. 반갑더군요. 비록 사진으로지만 그야말로 미국 한복판에서 한국사람을 만난 것이죠.
일단, 항공사 라운지를 통해 호텔로 승객 수송이 이뤄졌고, 그로부터 4일간 비행금지 조치로 인해 호텔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전 미국 영공에는 전투기 이외는 어떤 비행기도 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테러 직후 역설적으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진 하늘로 날아오른 비행기들이 있었습니다. 한 대의 보잉 747과 3기의 F-16 호위 전투기 말이죠. 바로 'Air Force 1(공군1호기)' 으로 불리는 대통령 전용기였습니다. 이 편대는 8시간 동안 미국의 영공 10km 상공에서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했는데,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위시한 수뇌부들이 비상대책을 강구했겠지요.
어쨌든, 전 세계는 일대 혼란에 빠져듭니다. 일단 미국으로 향하던 모든 국제선 비행기는 미국 이외의 가까운 외국 공항으로 목적지를 바꾸거나 출발지로 돌아가야 했던 것이죠. 당시 미국에는 하루 2만편에 가까운 항공기들이 왕래를 했다고 합니다.
저를 비롯해서 같은 항공사 승객들은 공항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모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아침마다 호텔 로비로 항공사 직원들이 찾아와 자기 승객들에게 식사권을 배급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제일 침착하고,성의껏 승객들을 챙겼던 항공사가 바로 그 UA(United Airlines)여서 인상이 오래 남았습니다. 저는 저가 항공사이던 사우스웨스트였죠.
자동차가 없었던 터라 이후 나흘간 똑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어느 날은 호텔이 제공한 밴을 타고 다운타운 리커 스토어로 생필품을 사러 가기도 했습니다.
위치타 대평원의 석양.
그 이후 다시 비행이 재개되어 LA로 돌아왔으나, 메이저 리그 경기를 비롯해 전국의 엔터테인먼트 행사가 추모기간으로 일주일간 중단됩니다. 일주일이 지나 다시 메이저 리그가 재개되고, 다시 박찬호 선수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의 선수이던 김병현 선수를 따라 다니는 일정이 다시 보름간 이어집니다.
대폭 강화된 공항검색으로 번번히 비행기를 놓쳐가며 그 이후 보름을 전전했습니다. 멀쩡한 카메라도 다시 셔터를 눌러 보라거나, 대포처럼 생긴 망원 렌즈는 아예 무기 취급을 당했습니다. 제게도 손도 못 대게 하고 안전요원을 불렀습니다.붉으죽죽한 현상액과 투명한 정착액이 나눠 담겨진 항온계(바깥에 온도계와 탐침이 부착된)는 TNT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에 김병현 선수의 홈 경기 취재를 위해 LA에서 애리조나로 가게 됩니다. 3시간 전에 도착해서 카운터에서 자리를 배정받아 출발 브릿지로 올라가는 데만 3번의 검색을 받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다른 브릿지에서 좌절하게 됩니다. 이미 항공기 문은 닫혔고, 내 자리는 대기승객에게 돌아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BK' 취재를 위해 왔는데, 그것도 왕복 260달러라는 거금을 지불했는데, 좌석배정도 받았는데, 이럴 수는 없다고 항의를 했습니다. 대개 그 구간은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하면 100달러 미만에서 살 수 있는 구간입니다. 싸게는 60달러에도... 머리를 긁적이며 항공기로 들어간 직원이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싱글거리는 승객을 한 명 데리고 나왔습니다. 왜 싱글거리는지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 그 많은 짐을 입구 스튜어디스에게 맡기고 자리로 찾아갔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옆 손님에게 물었더니, 조금전 기내 방송이 나왔다는 군요.
"한국에서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BK'(당시 김병현을 현지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습니다)를 취재하기 위해 기자가 왔는데, 보안수속이 늦어져 타질 못했다. 그런데, 여러분 들 중에서 다음 비행기로 양보를 해주시면 1등석 업그레이드 외에 200달러 바우처를 주겠다" 고 했는데, 급할 것 없는 젊은 친구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었답니다. 그중에서 화물칸에 짐이 없는 친구가 당첨(?)이 되었다는군요.
그 뒤로도 지난한 고생을 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고생이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테러 이후 재개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의 첫 홈경기. 경기 시작 전 추모식 전경.
지난해 뉴욕 맨해튼에 들렀습니다. 그날의 상흔은 모두의 마음 속에 남긴 채 사라진 쌍둥이 무역센터 자리엔 '원월드 트레이드센터'가 다시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후 수많은 '복수혈전'이 치러졌지만, 세상은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이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세상은 그리스 신화 속의 뱀 '우로보로스'를 닮아가는 걸까요? 자기 꼬리를 남의 것으로 알고 깨무는데 아픔을 느낄수록 더 힘껏 자기 꼬리를 깨문다는 뱀.
***이와 관련한 웃지 못할 후일담 하나.
오래 전 저의 이 경험담을 동네 이웃과 나누는 걸 들었던 제 아들이 어느날 초등학교에서 9.11에 관한 내용으로 수업을 듣던 중 일을 내고 맙니다.
"우리 아빠가 그날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라고 얘기를 한 것이죠. 그날 그 상공의 다른 비행기를 '테러에 이용된 그 비행기'라고 알고 그랬던 것이죠. ㅎㅎ
아시다시피 모든 승객이 희생을 당했죠. 그날 우리 아들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친구들이 거짓말쟁이라고 그랬고, 아들은 사실이라고, 우리 아빠는 살아 있다고 강변한 것이죠. ㅎㅎ
아들은 지금도 그때 일을 얘기하면 멋적게 웃습니다.
비행기에서 바라 본 뱅크 원 볼파크. 공항 근처라 비행기 창문에서 잘 보입니다.
8일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 공항에 도착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말로만 듣던 톰소여의 산실인 미시시피강을 본 것이죠. 제가 자란 낙동강처럼 흙탕물이더군요. 이후 강둑에 가서 손도 담궈 봤습니다. 세번 째 다리 옆에 아래에 나오는 게이트웨이 아치가 보입니다. 그쪽이 세인트 루이스 다운타운이고, 그 가운데 부쉬 스타디움이 있습니다. 강 왼쪽은 일리노이주이고 오른쪽은 미주리주입니다.
돈을 내고 경사진 아치 내부를 특이하게 생긴 엘리베이터로 올라갑니다. 미시시피강에 드리워진 아치 그림자를 보시면 대략 그 크기를 가늠하실 텐데, 어쨌든 엄첩납디다. 네명 정도가 끼어서 타는 박스가 죽 연결된 채 경사진 내부를 올라갑니다. 말하자면 기차 모양으로 정상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게이트웨이 아치를 비롯한 일대 공원구역이 지난 2018년 2월 미국의 6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습니다. 정상에서는 조그만 창으로 외부를 조망하게 됩니다.
강 건너편은 일리노이 주입니다.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의 홈구장인 부쉬 스타디움입니다. 다운타운 한 가운데 있는데, 버드와이저 맥주로 유명한 앤하이져 부쉬사가 스폰서하는 구장이죠. 거대한 게이트웨이 아치 위에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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