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소슬바람이 목덜미를 선득하게 하는 가을입니다. 가을하면 여러 가지가 떠 오를테지만 저는 문든 오래 전 다녀왔던 곰 사냥이 생각나는군요. 어떤 분들은 동물 사냥이 잔인하다고 그러실테지만 미국에서는 엄연히 법으로 보장된 시민의 권리이기도 합니다.
캘리포니아 주법 Fish and Game Code Section 1801에 이렇게 명시돼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야생동물의 선의의 이용과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야생동물의 환경적인 가치와 그들 고유의 종을 보존하기 위해 -미적이고 교육적이며 비영리적인 이용을 위해 -스포츠 사냥을 포함, 다양한 취미생활의 유지하기 위해
***지금부터 보실 내용 중의 어떤 사진들은 보기에 따라선 불편하실 수 있으니, 돌아 나가시면 되겠습니다.
컹- 컹- 컹.
사냥개 짖는 소리와 함께 궁지에 몰린 곰의 절규가 간간이 세코이아 원시림 너머 저쪽에서 들려 온다. 지직대는 무전기와 끊어질 듯 가늘게 들려 오는 짐승들의 소리에 이끌려 급경사의 비탈을 구르고, 수 백년 전에 누워 버렸을 거대한 고목를 넘고, 낭떠러지를 돌아 곰을 쫒은 지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모두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숨소리는 거칠다.
길을 찾느라 잠깐 멈춘 사이 고개를 드니 멀리 마운트 홈의 정상 언저리가 초겨울의 엷은 햇살에 빛나고 있다. 키 큰 가이드 스위처는 또다시 말 없이 눈앞에 가로 놓인 산등성이를 넘어갈 태세다. 그동안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소리에 몇 번을 속았기에 저 너머에 곰이 있으리라는 기대는 벌써 버렸다.
이번 사냥길에 나선 일행은 에이스헌팅 클럽 회원 여섯 명과 기자, 그리고 7학년인 박종필군. 박군은 이미 LA 페어 사격장에서 자전거를 경품으로 받을 정도의 실력을 인정받은 예비 명포수다. 94년 연방정부와 가주정부로부터 비영리단체 등록을 하고 정식허가를 받은 이 클럽은 주니어를 포함해 회원수가 1백 여명에 이른다. 이 단체의 총무를 맡고 있는 윌리엄은 그동안 잡은 곰이 여섯 마리에 이르는 베테랑 명포수다. 1년에 타주로 원정사냥을 가는 경우도 평균 7, 8회 정도라는데, 곰과 사슴을 비롯해 코요테, 산고양이, 칠면조 등 사냥감이 다양해 경력이 쌓일 수록 그 묘미에 흠뻑 빠지게 된단다.
곰 사냥 시즌은 대개 9월 셋째 주부터 시작해 12월 말까지 계속되는데 캘리포니아의 불곰 숫자는 어림잡아 3만마리에서 4만 마리로 캘리포니아 낚시수렵국(DFG. Department of Fishing and Game, 사냥을 Hunting이 아니라 Game으로 부른다.)은 추정하고 있다. 작년에는 1500마리가 수렵 대상이었는데 올해(2020년)는 1700마리를 잡을 수 있다. 그만큼 숫자가 늘어났다는 증거. 1700마리를 먼저 잡든, 기간이 먼저이든 사냥시즌은 끝이 난다. 올해(2020년)의 사냥 시즌은 10월 10일부터 12월 27일까지다.
LA에서 저녁에 출발해 5번 프리웨이 북쪽으로 4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컨(Kern) 카운티의 세코이아 국유림의 마운틴 홈 주립산림지(Mountain Home State Forest). 근처 모텔에서 지난 사냥길의 모험담으로 밤을 새우다시피하다 잠든 것이 새벽녘, 가이드의 모닝콜에 눈을 뜬 시각이 4시 30분.
겨우 눈꼽만 떼고 모텔 문을 여니 여명에 빛이 바래져 가는 하현달 아래 저쪽 어디에선가 코요테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수은주는 화씨 32도(섭씨 0도). 겹겹이 옷을 껴입고 근처 주유소에서 개스를 채우는 사이 일행은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을 떼운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니 나지막한 관목들이 점점 아름드리 세코이아 나무와 소나무들로 변한다. 거대한 세코이아 나무를 피해 만든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 달려 넓은 공터에 도착하니, 각자 4륜 구동 트럭에 사냥개 서너 마리씩 실은 몰이꾼들이 리더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거친 인상, 작달막한 키, 허벅지같이 굵은 팔뚝이 마치 곰을 보는 듯 하다. 잠시 후 가이드들이 곰의 흔적을 쫓아 흩어지고 일행은 총기를 손질하며 기다림의 시간으로 접어든다.
원래 사냥이란 것은 사냥꾼 혼자서 개를 앞세워 몇 날 며칠 추격해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것이지만 시간이 없어 그럴 수 없는 이들은 가이드 비용을 지불하고 그들이 곰을 몰아 나무 위에 올라간 사이 사냥꾼에게 연락해 달려가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시금 잔가지를 헤치며 능선을 타고 오르니, 곰의 먹이가 되는 도토리가 지천으로 땅에 굴러 다닌다. 사냥개에게 쫓기며 흘렸을 곰의 배설물이 여기저기 보이자 일행은 점점 긴장과 흥분으로 숨소리가 가빠진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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